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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음식인데, 왜 ‘김장’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을까?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일은 어떻게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 되었을까요? 봄부터 시작되는 준비, 이웃과 나누는 김치, 달라진 김장 풍경까지 주모와 함께 들여다봅니다.

Oct 21, 2026
김치는 음식인데, 왜 ‘김장’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을까?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마당을 떠올려 보세요. 누군가는 배추를 옮기고, 누군가는 양념을 버무립니다. 큰 대야 앞에서 웃음소리가 오가고, 갓 담근 김치는 옆집 몫으로도 조금씩 덜어집니다. 주모가 그 풍경을 가리키며 묻습니다.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이 일이 어쩌다 세계유산이 되었을까요?

김장날은 늦가을인데, 준비는 봄부터

김장을 하루짜리 큰 행사로 기억하기 쉽지만, 준비는 훨씬 일찍 시작됩니다. 유네스코의 김장 소개 자료에 따르면 봄에는 새우와 멸치 같은 해산물로 젓갈을 준비하고, 여름에는 소금을 마련하며, 늦여름에는 고추를 말려 가루로 빻습니다. 늦가을이 되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 비로소 사계절의 준비가 한 통의 김치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언제 김장을 할지도 그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날씨와 기온을 살펴 김치 담그기에 알맞은 때를 골랐습니다. 긴 겨울 동안 먹을 채소를 마련해야 했으니, 김장은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다가오는 계절을 대비하는 생활의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장철 마당에는 재료뿐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배추를 손질하는 이, 속을 채우는 이, 저장할 통을 챙기는 이가 서로 일을 나누죠. 혼자라면 버거운 일을 여럿이 함께 치르는 풍경 속에서, 김장은 자연스럽게 가족과 이웃의 일이 되었습니다.

세계가 주목한 것은 김치 한 접시가 아니었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오른 항목의 이름은 ‘김장, 한국에서의 김치 만들기와 나누기’입니다. 주목할 대목은 바로 ‘만들기와 나누기’입니다. 특정한 김치 한 종류의 맛이나 비법에 상을 준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하고 서로 나누며 세대를 이어 온 문화적 실천의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김장에서는 누가 얼마나 잘 버무렸는지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갓 담근 김치를 친척이나 이웃에게 건네고, 서로의 방법을 배우는 일도 관습의 일부였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런 활동이 가족의 협력과 공동체의 유대, 소속감을 북돋운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김치통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장면까지 문화유산의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집집마다 달랐던 양념, 그 안에 쌓인 기억

같은 배추라도 어느 집에서 담갔느냐에 따라 김치 맛은 달라집니다. 김장에 쓰는 재료와 방법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가족 안에서 배운 방식도 조금씩 다릅니다. 유네스코 자료 역시 이런 차이를 지적하며, 김장 솜씨가 세대 사이에 전해져 왔다고 설명합니다.

누군가에게 김장의 기억은 빨간 양념이 잔뜩 묻은 장갑일 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추를 나르는 날의 서늘한 공기일 겁니다. ‘우리 집은 이렇게 담가’ 하고 서로 다른 방법을 꺼내 놓는 순간, 김장은 정해진 조리법보다 넓은 이야기가 됩니다. 한 사람의 솜씨만 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의 기억도 남으니까요.

이런 다양성 때문에 한 가지 양념 비율을 ‘원래 김장법’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지역과 집안의 방식이 공존해 온 사실 자체가 이 문화의 중요한 얼굴입니다. 주모가 손님마다 좋아하는 반찬을 다르게 내놓듯, 김장에도 각자의 식탁이 담겨 있습니다.

절임배추와 김치냉장고가 들어온 뒤에도

김장 풍경이 옛날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18년 코리아넷은 가족 규모와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서 절임배추를 사서 쓰거나 김치냉장고에 김치를 저장하는 방식이 늘어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예전에는 며칠씩 걸리던 과정의 일부를 줄이고, 필요한 양만 담그는 가정도 생긴 것이지요.

그렇다면 손이 덜 가는 김장은 전통에서 멀어진 걸까요?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 기사에도 김장을 마친 사람들이 갓 만든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굴을 함께 맛보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일하는 도구와 저장 방법은 바뀌어도, 수고를 마친 뒤 식탁에 둘러앉는 즐거움은 이어지는 겁니다.

올가을 누군가 김치 한 통을 건넨다면, 그 안에는 배추와 양념만 들어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해 날씨를 헤아린 시간, 함께 움직인 손, 이웃을 생각해 덜어 놓은 몫이 겹쳐 있을 테니까요. 김장 앞에서 이제 질문을 바꿔 볼까요. 무엇을 넣어야 가장 맛있을까가 아니라, 이번에는 누구와 함께 만들고 누구와 나누고 싶은가로요.

참고한 자료

  1. ich.unesco.org
  2. korea.net
  3. 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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