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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전 하얼빈의 총성, 안중근이 꿈꾼 독립과 평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117년이 지난 오늘, 그의 의거와 재판에서의 신념, 미완으로 남은 『동양평화론』을 돌아봅니다.

Oct 26, 2026
117년 전 하얼빈의 총성, 안중근이 꿈꾼 독립과 평화

117년 전 오늘, 중국 하얼빈역 승강장에 서 있던 한 한국인 청년은 자신의 행동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서 일본의 초대 한국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힌 그는 이후 재판과 옥중 저술을 통해 의거에 담긴 뜻을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그 사건에서 꼭 117년이 되는 날입니다.

왜 하얼빈이었을까요?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압박으로 독립국가로서의 권리를 차례로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됐고, 1907년에는 고종이 강제로 퇴위했으며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침략 정책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그를 겨눈 이유는 개인적 원한보다 국권 침탈에 대한 저항에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본래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도 힘썼습니다.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기르고자 했고, 이후 연해주에서 의병 활동에 나섰습니다. 1909년에는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으며 독립을 향한 결의를 다졌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맹세한 결단은 그가 이 길을 가볍게 선택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1909년 10월 26일, 역에서 벌어진 일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측 인사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 의사는 동지들과 행동을 준비했습니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채가구역, 안중근은 하얼빈역을 맡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날 오전 9시 30분 무렵, 열차에서 내려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가 지나가자 안중근은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총에 맞은 이토는 숨졌고, 안중근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그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이후 재판 과정에서 거듭 설명했습니다. 행동만큼이나 그가 남긴 말과 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법정에서 밝힌 신념

안중근 의사는 재판에서 이토가 대한제국의 권리를 침탈하고 한국인의 저항을 탄압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사적인 감정에서 한 사람을 해친 것이 아니라 의병의 일원으로 행동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전쟁 중 붙잡힌 사람으로 보아 국제법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진술에는 독립과 평화가 함께 등장합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는 정책을 중단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의거의 정당성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가 남긴 주장은 당시의 국권 침탈과 침략 정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입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동양평화론』

1910년 사형이 확정된 뒤에도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글을 썼습니다. 『안응칠역사』를 마친 그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구상한 평화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질서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한국·중국·일본이 협력해야 한다는 구상이 그 바탕에 있었습니다.

그는 책을 마칠 수 있도록 형 집행을 늦춰 달라고 요청했지만, 1910년 3월 26일 순국했습니다. 결국 『동양평화론』은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동양평화론』의 서문과 일부 내용이 지금까지 전하는 것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도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117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

하얼빈 의거가 곧바로 독립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듬해인 1910년,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삶과 사상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역사가 됐습니다. 그를 하얼빈의 총성으로만 기억하기보다, 국권을 되찾고 나라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평화를 꿈꾸었던 인물로 함께 기억하면 어떨까요?

참고한 자료

  1. contents.history.go.kr
  2. contents.history.go.kr
  3. contents.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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